[자유 게시판] 엠마뉘엘 카레르 소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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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꼼짝없이 아침 저녁으로 읽은 책이다.

손에서 책을 뗄 수가 없었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이 책을 보자마자 사기로 작정한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콧수염> 때문이다. 남자는 콧수염을 달고 산다. 그런데 아내를 놀래키려고 콧수염을 밀어 버린다. 아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이젠 남편이 당황한다. 급기야 아내는 당신이 원래 콧수염이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은 환장할 지경이다. 아내는 더 몰아 붙인다. 애초에 콧수염이 없었는데도 있었다고 하는 당신은 정신병자야! 남편은 완전히 다마가 돌아버린다. 이제 비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면 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왕국>은 바오로가 예수 사후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일어난 일들을 팩션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바오로가 누구던가? 예수의 복음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로 만든 인물이다. 그가 있었기에 예수의 말씀은 종교가 된 것이다. 바오로 옆에 루카가 있다. (누가복음 저자 누가를 이 소설은 루카라고 한다) 루카는 바오로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행장을 기록한다. 이른바 <사도행전>이다.

바오로는 예수의 부활에 주목한다. 사실 부활만큼 극적인 사건도 없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할아버지가 죽었다. 그런데 사흘 후에 무덤에 가보니 시신이 없어졌다.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막달라에 사는 마리아가 발견한다.네 사람이 봤다는 이야기도 있고, 무덤을 지키는 병사도 봤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할아버지 시신이 없어졌음을 알고 기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까무러칠 일이 벌어지게 된다. 당신 가족들이 근심어린 상태에서 모여 있는데 죽었던 할아버지가 들어와서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달라고 한다. 예수는 모여있던 12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밥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밥을 먹고 예수는 홀연히 빛이 되어 사라진다. 이게 부활이다. 당신은 이 상황을 목격했다. 당신의 이전 삶은 산산조각날 것이다.

그러니깐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는 부활한 것이다. 바오로가 주목한 것은 오로지 이것이다. 바오로는 12제자도 아니고 예수의 육성을 듣지도 않았다. 외려 예수 제자들을 핍박하는 존재였다.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서 개종한다. 그리고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세우게 된다. 바오로는 예수의 적통이 아니다. 따라서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예수 적통 제자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이들과 투쟁을 통해 바오로는 왕국을 건설해 간다. 바오로가 없었다면 예수는 동양에서 말하는 묵자나 노자처럼 멋진 말을 남긴 이스라엘의 어떤 현인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이 소설 <왕국>은 바오로가 세운 예수의 왕국 건설 과정을 따라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20대에 그리스도교에 심취한 젊은이였다. 이후에 무신론자가 된다. 그 뒤에 다시 젊은 날을 마주 대하게 되는 계기를 만나서 바오로 행적을 추적한다. 열렬한 니체주의자가 바라보는 그리스도교 탄생의 비밀?

요즘 역사적 예수에 대해 이해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심에 도올 선생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 전후의 중동정치지형, 로마의 지배,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신흥 종교세력의 대결 등을 살펴야 한다. <왕국>을 바오로가 지은 <로마서>와 같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무엇일까? 왜 바오로는 목숨을 걸고 극성스럽게 전도를 해야 했을까? 야고보는 왜 돌맞아 죽었고, 그 뒤에 마지막 남은 요한의 계시록은 어떻게 나왔는가? 그리스도교 탄생의 비밀을 딱딱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중간중간에 소설가가 시침질한 부분 역시 흥미롭다. 픽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도 아니다. 소설가가 해석한 역사? 물론 역사는 해석이다. 신학자가 바라보는 시각과 사뭇 다르다. 바오로의 삶과 작가의 삶이 서로 비춰지고 대비되는 장면도 흥미롭다.

바오로는 율법에 맞서 투쟁하는 투사다. 그는 보편적 진리로서 사랑을 내세웠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

소설 좋아하는 분이 올 여름 휴가에 읽을만한 책이 없나고 물으신다면 과감하게 강추하고 싶다. 책이 700페이지 가량 되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하여튼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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