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下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中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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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와 이타의 경계


이기와 이타의 진화


새로운 집단 선택 이론

  1. 다중 수준 선택 이론

    그렇다면, 프란스 드 발이나 제인 구달이 이야기했던 전쟁이라는 진화의 원동력은 허구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줄곧 ‘집단 선택’의 가능성을 부정하며, 집단 선택의 결과로 보이는 형질도 개체 수준에서 일어난 선택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집단 선택’이 주된 기제가 아닐 수도 있는 사례를 보인 것일 뿐, ‘집단 선택’이 불가능함을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집단 선택’의 기제는 주장하는 쪽이 밝혀야 맞지만, 도킨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사례들이 우리를 ‘집단 선택’의 논리로 유혹한다. 이에 1990년대부터 집단 수준에서도 선택이 작용한다는 새로운 이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다중 수준 선택 이론’으로 불리는 이 이론은 도킨스의 ‘유전자 중심 이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선택의 수준이 ‘개체’ 뿐 아니라 ‘집단’에서도 나타난다고 주장한다.[15]나는 개인적으로 ‘집단’ 수준의 선택이 존재함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도킨스가 했던 반복 딜레마 게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이 게임을 계속 진행하다보면, 집단 구성원의 빈도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과정을 겪으며, 그 안에서 일시적인 균형점들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은파 12마리와 선심파 2마리로 구성된 집단1과 배신파 12마리와 보은파 2마리의 집단2, 배신파 14마리의 집단3을 생각해 보자. 앞서 예시했던 반복 게임의 방식으로 계산을 마치면, 각 집단의 구성원들은 390점, 138점, 130점으로 모두 집단 내에서 동일한 점수를 얻는다. 어느 개체도 특별히 유리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집단1은 배신파의 난입을 허용하지 않고 선심파의 증가는 확률적 우연에 의한다는 면에서 꽤 안정되어 있으며, 집단3은 선심파와 보은파 모두를 제거하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이다. 반면에 집단2는 약간의 빈도 변화만으로 집단1이 되거나 집단3이 되는 불안정한 균형점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때. 현실과 같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세 집단이 경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점수의 결과처럼 집단1은 유리한 위치에, 집단3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기와 이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집단2에게는 이타의 길로 인도하는 선택압이 작용할 터이다. 이 경우에도 과연 이타성이 개체 수준의 선택에만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개체인가, 집단인가

    물론 도킨스는 집단 사이의 게임 이론은 너무나 미약해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다. 보은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핵심적인 기제는 개인 수준에 있고, 집단 사이의 경쟁은 이를 강화하는 부차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는 ‘집단 수준의 선택’이 제안하는 이타성은 개체의 이기적인 행동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정말 도킨스의 말처럼 높은 수준의 이타성은 절대 낮은 수준의 이기성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도킨스가 그토록 총애하는 유전자가 배신자가 되어 우리에게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균등한 감수분열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N의 염색체가 감수분열하여 N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이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 감수분열부등(meiotic drive)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감수분열에서 염색체를 불평등하게 분리하고, 더 많이 분리된 쪽에 있는 유전자의 빈도를 증가시킨다. 자연 선택이 유전자의 수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첫째로 감수분열부등이 유전자에게는 이롭지만, 유전자의 동형접합성을 강화하여 개체의 이익에는 반한다는 사실이며, 둘째로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에는 감수분열부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유전자는 작정하고 의도하는 바가 없는데, 어떻게 서로 타협하여 ‘개체의 이익’을 위해 공평하게 5:5로 감수분열하게 되었을까. 결국 이는 한 수준 높은 단계의 자연 선택이 낮은 수준의 자연 선택보다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15]더욱이 논리적으로, 같은 수준에서 형질마다 선택압의 강도가 다르게 작용하고, 다른 수준 사이에 이득(+)과 손해(-)의 딜레마가 발생함을 긍정한다면, 낮은 수준에서는 근소하게 손해(-0)이지만, 높은 수준에서는 큰 이득(+)이 되는 형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집단 수준의 선택이 개인의 일탈을 막을 수 없다는 도킨스의 주장에는 이 논리가 결여되어 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다시 도킨스의 조정 경기의 예시로 돌아가 보자. 왼손잡이는 개체의 생존에는 영향이 없는 형질이지만, 집단의 승리를 이끄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지어 일상에서 왼손잡이는 약간의 불편을 겪기도 하는데, 조정 경기에서는 왼손잡이가 우수한 형질로서 번성하게 된다. 즉, 왼손잡이 선수는 개체 수준에서 근소하게 손해(-0)를 보고 있지만, 집단 수준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진화의 선택압은 낮은 수준의 선택과 높은 수준의 선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라이언일병.JPG

    전쟁은 정말 이기성과 이타성을 발전시킨 진화의 원동력인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3. 집단의 크기

    집단 수준의 선택을 인정하고 나면, “대체 어디까지 집단의 이익을 확장해야 하느냐”던 도킨스의 비아냥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우리의 ‘새로운 집단 선택 이론’은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과 달리 이타성의 주변에 이기성이라는 경계를 둘러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비롯된 이타성은 집단의 범위로 한정되고, 그 집단의 크기는 다른 유전 형질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를 둘러싼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들이 서로 맞물려 결정된다. 육식을 하는지, 채식을 하는지, 힘이 강한지, 약한지, 숲에 사는지, 들판에 사는지, 동종 간 집단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한다. 이러한 설명에도 만약 “왜 집단의 이익을 더 확장하지 않느냐”고 계속 묻는다면, 나는 “왜 모든 동물들이 더 덩치가 커지지 않고, 왜 힘은 더 세지지 않느냐”냐고 되묻고 싶다.그리고 혹자는 개체들이 이합집산하는 모습에서 집단의 범위가 지나치게 일시적이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선택의 수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도킨스가 설명하였듯, 본래 운반자는 일시성과 유동성이 특징이다. 진화가 이루지는 긴 시간에 비추어 보자면 집단의 존속 기간이나 개체의 생존 기간이나 오십보백보이다. 집단도 하나의 운반자로서 선택의 수준이 못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15] 오히려 이는, 앞서 인류학자와 영장류학자들이 관찰한 바와 같이, 일시적이고 유동적으로 작용하는 마음의 경계와 잘 맞아 떨어질 뿐이다.
  4. 집단의 도덕

    리처드 도킨스는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을 비판하며 도덕적 이상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지만, 반대로 본인은 마음속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도덕적 가치를 지나치게 배제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인간 또한 진화의 산물임을 볼 때, 제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가 이타적인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타적인 행동을 개체 수준의 생존 전략으로만 설명하기 위해서 너무 단순한 사례들만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과 같이 공감과 역지사지에서 오는 이타적 행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고, 혈연선택을 벗어나는 유인원의 이타성을 ‘오류’로서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4]또한 도킨스는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현대에 들어서까지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고, 단합하지 못한 집단은 종족 학살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많은 영장류학자들이 유인원의 치열한 집단 경쟁과 동종 살해 성향을 보고했다. 그럼에도 그는 집단 수준의 선택압은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이타성의 근원을 오로지 집단 내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취급함으로써, 실제로 발견되는 사회적 행위들의 설명을 포기한다. 일례로, 침팬지나 보노보는 집단 내의 분쟁이 발생하면 높은 서열의 개체들이 나서서 당사자들을 화해시키는 사회 활동을 한다. 수컷 우두머리는 힘으로라도 싸움을 뜯어 말리고, 암컷 우두머리는 머쓱해진 양측을 털고르기 해주며 화해시킨다.[6] 이 같은 이타적 중재 행위를 어떻게 혈연 선택이나 개체 수준의 선택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개체 수준의 선택에 따르자면, 분쟁에 개입함은 자칫 싸움에 휘말릴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관망함은 분쟁 당사자의 죽음으로부터 자원을 나눠 쓰는 경쟁자가 제거되는 이득이 있으므로, 개체들은 그저 싸움을 관망하거나 부추김이 최선의 전략일 터이다.인류를 비롯해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은 집단의 분열을 막고 친목을 다지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 집단의 역사에서 분열은 죽음을, 단합은 생존을 의미했다. 피와 살이 튀는 집단 간의 이기적인 경쟁 속에서 이타적인 행동은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시작이 개체 수준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하여도, 그것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고 고도화시킨 기제는 집단 수준의 선택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도킨스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이기와 이타의 본성을 왜곡하고 있다. 나는 미국에 있을 그에게, 집단을 위한 이타적 희생이 결국은 이기적 생존의 길임을 일깨우는, 집단 선택론자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하면 살 것이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3)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동전의 양면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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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all, J. and Tomasello, M. (200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30 years later.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5), 187-192.

[4] Dawkins, 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홍영남 (번역). 서울 : 을유문화사 (원전은 2006에 출판)

[5] Dawkins, R. (2007). 만들어진 신. 이한음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6년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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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iamond, J. (1996). 제3의 침팬지. 김정흠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1993에 출판)

[8]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9] Doker, J.(2012).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신예경 (번역). 경기도 파주 : (주)알마. (원전은 2008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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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Wilson, D. S., Sober, E. (1994). Reintroducing group selection to the human behavioral science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7, 58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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