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금융 시장 역사] 1929년 시장 붕괴의 원인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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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16일, 예일 대학 어빙 피셔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에 도달했다.”라고 썼다. 그로부터 8일 후인 1929년 10월 24일 주식 시장은 4일간의 폭락을 시작했고, 검은 목요일이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이 시장 붕괴로 투자자들은 1차 세계 대전 이상의 손실을 입었고,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촉매들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어빙 피셔의 “선언”은 역사상 최악의 시장 예측으로 남았다.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이전: 위험과 경고 신호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만,N'광란의 20년대'에는 낙관주의와 풍요로움이 전에는 없었던 것처럼 커져만 갔다. 경제는 42%나 성장했고(실질 GDP는 1920년 6,880억 달러에서 1929년 9,770억 달러로 증가했고), 평균 소득은 약 1,500달러까지 상승했으며, 실업률은 4% 아래로 떨어졌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생산의 거의 절반을 담당했고, 냉장고, 세탁기, 라디오 및 진공청소기 같은 소비재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식 투자는 마치 야구 같았다. 국민적 오락 거리가 됐다는 말이다. 교사, 운전기사 및 가정부가 주식 투자로 몇 백만 달러를 벌었다는 얘기가 신문 지상을 장식하면서, 위험에 대한 걱정은 수증기처럼 사라졌다.

모든 이들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했고, 증권사마다 쉽게 돈을 빌려줬다. 특히, 기업과 개인은 돈을 빌려 소정의 "증거금만 치르고" 주식을 매수했다. 증거금만 치르고 주식을 매수한다는 의미는 매수 금액 중 자기 돈은 10-20% 정도고 나머지는 증권사에서 빌려준다는 말이다.

만일 주가가 대출 원금 이하로 하락하게 되면, 증권사는 "마진콜(추가 증거금)"을 청구할 수 있고, 추가 증거금 납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즉시 대출 상환을 요구하게 된다. 때문에 아주 위험한 투자 방식이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은행들까지 증거금만 치르고 주식을 매수하고 있었으며, 규제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 은행은 고객 예탁금까지 동원하는 일도 있었다. 아래 1920년부터 1929년 9월까지 다우 존스 산업 평균 지수 차트는 이 기간 동안 주식 시장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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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3월 25일 주식 시장은 조정을 보였다. 52주 최고치 대비 10% 하락한 것이다. 마진콜이 발동되었고,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지 않겠다고 확인해 주면서 우려는 가라앉았고, 시장은 다시 회복되었다.

검은 목요일 이후에도 은행들은 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진정 시키고자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또 다른 경고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대개 무시되었습니다. 철강 생산, 자동차 판매 및 주택 건설 모두가 둔화되었다. 여러 은행이 파산했다.

몇몇 이단아들이 시장 급락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어빙 피셔의 낙관적 전망을 공유했다.

여름 기간 동안 주가는 새로운 최고점을 갈아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비관적 전망을 완전히 무시했고, 1929년 9월 3일 다우 존스 산업 평균 지수가 381.1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27% 상승하자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결국 시장은 붕괴되었고, 그 후 다우 지수는 1954년까지 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

이후 몇 주 동안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1929년 10월 23일이 되자, 다우 지수는 고점 대비 20% 가까이 하락한 상태였고, 장 마감 한 시간 동안 다시 급락했다. 혼란과 우려 속에 장이 마감됐다.

다음날은 역사에서 검은 목요일로 기록된다. 10월 24일 개장 벨이 울리자, 원유 업체 시티즈 서비스의 주식 150,000주의 거래가 840만 달러에 체결되었다. 전에 없던 대규모 블록 트레이드였다.

오전장 중반경, 우량주들은 거래 시마다 10달러씩 하락했고, 정오가 되자 대형주인 RCA 코퍼레이션과 몽고메리 워드는 각각 35% 및 40% 폭락해 있었다. 패닉 상태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뉴욕 증권 거래소의 대표이자 J.P. 모건의 수성 중개이던 리처드 휘트니가 U.S. 스틸 주식 25,000주를 직전 주가보다 10달러 높게 매수했다.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고, 시장은 반등했다. 예를 들어 몽고메리 워드는 주당 83달러로 출발해 50달러까지 하락한 후, 74달러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다우 지수는 11% 하락으로 마감했고, 일간 거래량은 약 1,300만 주로 정상 거래의 3배에 달했다. 거래 내용은 분당 285단어뿐이 인쇄할 수 없던 티커 테이프를 통해 인쇄되었다. 티커 테이프는 장 마감 후에도 4시간이 넘게 돌아갔다.

금요일 시장은 침착해졌고, 거래량은 600만 주로 줄었다. 투자자들은 긴장된 주말을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면서 보냈고, 월요일 장이 재개되자, 주가는 급락했고 거래량은 다시 치솟았다. 검은 목요일과 달리 장은 마감 때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검은 화요일이었던 1929년 10월 29일, 투자자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장시 시작 30분 만 거래량은 3백만 주에 달했다. 투자자들이 자기 주식 중개인들과 통화하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전화선이 막혔고, 웨스턴 유니온의 전보량은 3배로 뛰었다.

투자자들이 마천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는 가짜 소문이 패닉에 기름을 부었다. 거래소 객장에서는 주먹다짐도 벌어졌다. 증권사들은 마진콜을 불렀고, 즉시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지 못했거나, 80-90%에 달하는 차입금을 갚지 못한 투자자들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들 투자자의 노후 자금이 그렇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장이 마감되자 다우 지수는 12% 하락해 있었다. 거래량 1,640만 주의 내용을 기록하는데 15,000마일 길이의 티커 테이프가 필요했다. 길이만 놓고 볼 때, 맨해튼에서 시드니까지의 거리는 9,931마일에 불과했다. 시장은 공식적으로 붕괴됐다.

<1929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시장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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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주식 시장은 왜 붕괴되었을까?

1929년의 주식 시장 붕괴를 일으킨 촉매는 하나뿐이 아니다. 다음을 포함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기여했다.

신용 매수

시장이 붕괴되기 전, 미국에서 주식 매수에 사용된 자금 1달러마다 거의 40센트가 신용 매수를 통한 빌린 돈이었다. 시장이 급락하기 시작하자, 증권사들은 마진콜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신용 매수에 나섰던 이들은 거의 추가 증거금을 납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자, 증권사들은 그들의 주식을 그냥 팔아치웠고, 그 순간 그들의 계좌는 깡통이 되는 한편, 시장 패닉은 커져만 갔다.

법적 보호 장치 부족

지금 같은 은행 예금 및 유가증권 거래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는 1929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고객들 모르게 그들의 예금을 주식 매수에 사용했기 때문에, 시장이 붕괴된 후 1달러 당 단돈 10센트만 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증권사가 폐업한 경우, 해당 증권사에 계좌가 있던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었다. 뉴딜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력의 일환으로, 1933년과 1934년에 각각 연방 예금 보험 공사(FDIC)와 증권 거래 위원회(SEC)가 설립되었다.

고평가된 주식

1929년 시장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 종종 고평가된 주식이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는 없다. 1925년부터 1929년 사이, 주가는 120%, 또는 연평균 22%의 상승을 보였다. 엄청난 상승세인 건 분명하지만, 엄청난 경제 성장의 맥락에서 봤을 때 비합리적 수준은 아니었다.

PER 배수 또한 고평가였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1929년 평균 PER 배수는 약 15배였다. 2018년 1월 S&P 500의 PER 배수는 그보다 높은 23배 정도였다. 유명 인사들과 언론 기사가 떠들어 대면서, 대중들 사이에 시장 고평가되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장 붕괴에 기여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언론 기사

1929년 10월 초, 신문들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우려를 부추겼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1929년 10월 3일 필립 스노우덴 영국 재무장관이 미국 주식 시장을 "완벽한 투기판"이라고 불렀고, 다음날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 타임스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기사를 실은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1면은 "올해 최악의 불운 주식 시장 강타"라는 제목의 기사로 장식되었다.

10월 17일, 워싱턴 포스트는 전날 시장 하락을 "치명타를 입은 주식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AP 통신의 기사는 공공 전력 회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은 점에 방점을 찍었고, 이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가 다른 매체들이 인용했고, 따라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1929년 전력 회사들의 주식은 장부 가치 대비 3배가 넘는 주가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사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데 적당했다. 검은 목요일을 앞두고, 주요 신문의 1면은 계속해서 시장 하락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 당국이 이런 하락에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공포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들의 뉴스 보도가 틀린 건 아니었지만,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데 톡톡히 한몫 한 건 분명하다. 이런 뉴스 1면의 효과는 관객들로 꽉 찬 영화관에서 "불이야"를 외치는 꼴과 다름없었다.

런던의 문제

1929년 9월 20일, 런던 증권 거래소는 아트리 그룹의 주식 거래를 중지시켰다. 이 그룹의 창업자 클라렌스 아트리가 사기성 담보로 유나이트 스틸 컴퍼니를 매수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아트리 그룹은 무너졌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이 증발되는 한편, 런던 증권 거래소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소식은 미국 투자자들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연준의 정책

오랜 기간 경제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연준의 정책이 시장 붕괴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해 왔다. 1928년과 1929년, 연준은 유가증권 투기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금리가 높아지자 미국의 경제 활동이 둔화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국제적 금본위제로 인해, 외국 중앙은행들도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긴축 통화 정책이 일부 국가에 경기 침체를 촉발시켰고, 세계 무역을 위축시켰다. 2002년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연준의 실수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적 재앙"에 기여했다고 말하면서, 시장 붕괴에서 연준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1929년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1927년부터 시장 붕괴 직전까지, 시장 수익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28년 주가는 무려 43.8%나 상승했다. 다음 차트는 1927년부터 1932년까지 다우 존스 산업 평균 지수의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시장이 붕괴된 후 1932년에 마침내 바닥을 찍을 때까지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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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8월부터 1933년 3월까지, 주식 60%와 채권 40%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의 총 수익률은 - 50.2%였다. 같은 기간 동안 S&P 500의 총 수익률은 - 74.6%였고, 10년 만기 국채의 총 수익률은 + 15.3%였다. 이로 인해 60/40 포트폴리오는 지금까지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투자 전략으로 남게 되었다.

<1926년부터 2018년까지 60/40 포트폴리오의 수익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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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재앙을 피할 수 없었을까?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1929년 시장 붕괴가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고, 거의 완전히 털렸다. 실제로 그는 시장 붕괴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우울증을 앓았고, 투자 전략을 바꾸게 된다. 시장의 "야성적 충동"은 언제나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기본적인 가치에 상관없이 주가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케인스조차 시장 붕괴를 피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1929년 시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기였다. 주가가 붕괴되었다가 다시 상승세를 타길 여러 차례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 붕괴가 언제 끝날지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시장의 경고 신호를 정확히 읽고, 검은 목요일에 앞서 주식 매도했고, 다음날 떨어진 주가에 주식을 다시 매수하고 즐거워했지만, 이어진 검은 화요일 훨씬 더 큰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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