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빈부의 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 까마라 대주교

1999년 8월 28일 까마라 주교 선종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자선과 나눔의 미묘한 차이, 동정과 연대의 애매한 차이, 기부와 참여의 보이지 않는 차이를 이렇게 말 한 마디로 묘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명언을 남긴 브라질의 가난한 이들의 사제 헬더 까마라 대주교가 1999년 8월 29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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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기를 희망했고 자주 그 희망을 토로했다. 그때 아버지가 그에게 해 준 말은 평생의 양분으로 남는다. "사제란 자기 마음대로,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야. 사제에게는 한 가지 존재 이유밖에 없어.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거야."

사제가 된 그는 세계 성체 대회와 카톨릭 역사상 의미가 지대한 제 2차 바티칸 공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 그는 프랑스 주교로부터 또 하나의 천둥 같은 말을 듣는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능력을 쓰라. 빈부의 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여느 남미 국가들처럼, 아니 또는 그 이상으로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심각을 넘어 치명적이었다. 처음에는 가난한 이들을N'도우려고' 노력하며 공공 주택 사업 등을 주창하던 그였지만 브라질 사회는 자선과 기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구의 10퍼센트도 안되는 특권층이 국민총생산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고, 인구의 절반이 생존 임계치의 수입에 허덕였다. (브라질의 서쪽으로 태평양 건너에 있는 아시아의 한 반도국의 경우도 상위 10퍼센트가 부동산 등 자산 총액 74.8퍼센트를 독식하고 있긴 하다.) 빈부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에 따른다면 창조주의 얼굴은 이미 먹칠로 빈틈이 없을 터였다.

까마라 주교는 드디어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넘어서서 "왜 그들은 가난한가?"의 문제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헤롯에 의해 죽어간 어린아이들과 왜곡된 사회 구조 때문에 채 커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아이들이 무엇이 다른가?" 라고 물으면서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브라질의 특권층에 맞선 것이다.

"교회는N'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라고 당신의 사명을 선언하신 주님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에게는 "빨갱이", "국가전복자"의 비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살해 협박도 부지기수로 받았다. "사제복을 벗고 정치나 하라."는 말은 현실참여에 열심이었던 아시아의 분단 국가 신부들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압박과 공포에도 까마라는 의연했다. 오히려 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양심적으로 폭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 이들, 그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한 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면서 "체 게바라는 마틴 루터 킹만큼이나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주교관을 개방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게 만들고 신학교도 빈민가로 옮겨 신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직면해야 할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던 대주교. 그는 어느 날 당신을 괴롭힌 가장 큰 적이 누구였냐는 질문을 받는다.

살해 협박을 일삼던 브라질 특권층이었을까. 해방신학을 위험시하여 보프 신부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까라마 자신도 은퇴시킨 로마 교황청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호소를 외면하던 브라질 정부였을까. 까라마 주교의 답은 의외였다.

“나 자신이 나의 가장 고약한 적입니다. 가장 다루기 힘든 상대이지요. 바로 이 가슴팍이 평화를 위한 내 투쟁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입니다."

"빈부의 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임을 깨닫고 그 시정에 힘쓰면서, 목숨에 대한 위협에도 꿋꿋이 맞서며 천주가 원하는 바에 따라 살려던 굳건한 사제이지만 그 역시 한 발의 걸음과 한 번의 선택에 숱한 게으름과 비겁함의 유혹을 넘어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을 부단히 겪으면서 까라마 대주교는 "사제는 한 가지 존재 이유밖에 없다.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거다."는 아버지의 명제를 평생 동안 지켜 냈다.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1999년오늘 하나님의 곁으로 갔다. "혼자 꾸면 그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됩니다."

브라질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시아의 반도국에도 오랫 동안 핍박받는 이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가장 낮은 이웃들을 위하여 30년 넘게 싸워 온 신부들이 있다.

그 험악한 유신 정권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고, 빽 없는 사람들의 가장 큰 빽이었으며, 살벌한 드잡이 후에도 가장 해맑은 미소를 펼쳐 보일 줄 알았고, 역사의 현장에 서는 일에 주저함도 아쉬움도 없었던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의 그 성스런 신부들은 요즘도 예수가 가르치고 까라마 대주교가 되새긴 말처럼 여러 사람들의 꿈을 ‘하늘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싸우며 철창의 가시밭을 드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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