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행복한 사랑??? 너나 해!!!”

“행복한 사랑??? 너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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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출신의 철학하는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를 읽고 있자니, 시선을 한방에 사로잡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랑은 행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리고 사랑이란 행복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행복과 관련이 있게 되면, 사랑은 즉각 부르주아적으로 굳어져버린 그 무엇으로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균형의 결핍상태를 의미한다. 행복한 사랑은 인간에게 균형의 결핍상태를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렇다, 행복한 사랑이란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행복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하나의 나선형 틀에 함께 틀어박힌 나사처럼 어떻게든 하나로 만들어 버린 두 사람의 반쪽 인간들, 두 명의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사람들은 마치 완전히 죽은 형상처럼 되어 버린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가벼운 산들바람도 있을 수 없으며, 따뜻한 바람도 없고, 뜨거운 바람도 있을 수 없다. 이미 모든 것은 굳어서 딱딱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그 속에서 괴물 같은 감춰진 폭력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것을N'행복한 사랑'이라고 불러 줄 수는 결코 없다."

'행복한 사랑'이란 현실을 외면하는 판타지였던 것일까. 이 평범하고 단순한 이치를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사랑이란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타르코프스키의 통찰은N'사랑(love)'의 어원이N'진리'에 대한N'앎'이나N'깨달음'의 갈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과 연관을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유사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비화된N'행복한 사랑'을 꿈꾸고 예찬해왔다. 그러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저 거기에 몰두할 뿐 사랑 자체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을 잃어버렸거나 오랫동안 사랑에서 떠나 있었던 사람들의 몫이다.
행복에 관해 묻는 자는 불행한 사람이요, 건강에 대해 역설하는 자는 아픈 사람인 법이다. 또한 청춘은 결코 청춘을 예찬하지 않는다. 청춘가를 부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이상 청춘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청춘에 찬사를 퍼붓는 것은 사실 세월의 위력 앞에서 무기력해진 자신을 초라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건 이미 현실 속에서 거세되어버린 욕망들이다.

모든 예찬은 예찬자 자신이 예찬의 대상으로부터 분리된 현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놓치거나 떠나보낸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뒷짐을 진 채 허허 웃으며 감탄하게 되는 셈이다. 미(美)에 대한 찬탄을 연발하는 그 밑바닥에서 쓸쓸한 탄식의 정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탄이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세상 하나를 상정함으로써 세계를 둘로 나누는 행위다. 그리고 탄성이란 대상과 주체 사이에서 이제껏 알아채지 못했던 거리를 확인하는 순간에 새어나오는 ‘측량의 감탄사’다. 결국 소외와 부재야말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드는 동인인 셈이다. 모든 예찬의 ‘속에 말’은 탄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사랑이란 서로간의, 주체와 대상의 결핍들의 조우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결핍을 아무리 인정하더라도 서로간의 결핍의 상대적인 체감온도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걸 편의상 강한 결핍과 약한 결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관계의 ‘권력’을 부여한다. 권력의 생산성이 있다지만, 권력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억압적이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어느 순간까지는 콩깍지가 껴있는 동안까지는 유지되더라도 그 꺼풀이 벗겨지는 순간 파탄나기 마련이다.

결국 사랑이란 자기와의 투쟁과 자기애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주체화의 끊임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주체’로서 나를 확인한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고 끝나버리는 것일까. 주체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은 삶의 ‘풍경’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풍경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사랑>에서 그 풍경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다.

“못생긴 여자는 자기보다 예쁜 여자 친구의 광채를 붙잡으려고 하고, 반면에 매혹적인 친구는 못생긴 자기 친구를 배경으로 해서 더욱 찬란하게 두드러져 보이고 싶어 하지. 그 때문에 우리의 우정은 언제나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결과가 생기는 거야.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 선택을 되는 대로 내버려두거나, 아니면 결투에 맡기거나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선택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예절의 문제야. 서로 상대방에게 그 중 더 예쁜 아가씨를 차지하도록 권하는 거야. 서로 상대방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권하기 때문에 같은 문으로 동시에 방에 들어가지 않는 고풍스런 두 사람의 신사처럼 말이야.”

사랑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의 문제이므로 ‘예절’ 즉 윤리적 범주다. 그건 행복한 사랑이라는 게 개별화된 주체의 일대일 사랑이라는 의미가 실은 ‘부조리’한 사회체계를 정당화하는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단호히 폭로하고 단죄한다. 왜 나는 주인공만 되려하는가. 왜 풍경으로 존재하여 ‘결핍된 사랑’들의 아픔을 감싸 않으려고 하지 않는가. 왜 결핍을 인정하고, 그 결핍을 집단과 사회로 확장하려 하지 않는가. 왜 ‘나’와 ‘너’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으로 될 수가 없는가.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욕망을 별개로 나누는 그 썩어빠진 부조리에 그만 지쳐간다. 풍경 없는 사랑에 지쳐간다. 풍경이 되어주지 못한 사랑에 지쳐간다. 그래서 미쳐버리거나, 죽거나.

임응식 작가의 유명한 ‘구직’이라는 작품이다.
50년이나 넘은 이 한 장의 사진이
요즘의 나의 절망과 슬픔을
함축한다.
그래서
‘불행한 사랑’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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